드디어...드디어 짬내고 짬내서
번역해왔던 사진집 번역이 끝낫따~!!!
처음에는 그냥 나 혼자 조용히 보자고
시작했던 번역인데 이왕 하는거
블로그에 올려보자고 맘먹어서
일이 너무 커져버렸다...ㅋㅋㅋㅋㅋㅋㅋ
엄청 힘들었습니다 엉엉ㅜㅜㅜ
올리는 번역 자료는 언제나 그렇듯
길이에 비해 퀄리티가 매우 아쉽습니다ㅋㅋㅋㅋ
아! 그리고 일부러 '~다' 랑 `~요'를 섞어서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다' 형식으로 통일했었는데
둘을 섞어서 쓰는게 좀 더 뭐랄까...
릿짱의 이야기를 듣는듯한 그런느낌? 같아서ㅋㅋㅋㅋ
퍼가시는건 상관없는데 출처만 남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번역은 언제나 그렇듯 힘들거든요ㅜㅜ
하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구글 크롬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거잖아요.
25세까지 기다리면 후회할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나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빨리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서문//
카와에이입니다.
정말로 거절할 수 없는 타입입니다.
어른을 싫어해요.
고민하는것들을 항상 두 사람 이상에게 상담하곤 합니다.
연애는 역시 안하는것보단 하는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오래 살고 싶긴 하지만, 단명하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소노 시온 감독을(감독의 작품들을) 매우 좋아합니다.
바보라고 불리우는것에 대해 딱히 거부감은 없습니다.
카와에이 집안의 차녀입니다.
어릴때부터 낯가림이 엄청 심했죠.
선배들에게 잘 하지 못해서 혼나는게 두려웠던 조그만 아이였습니다.
연기하는것이 가장 좋아요.
혹시, 당장 내일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해본적 있으신가요?
생각해본 결과, 지금의 제 자신이 여기에 이렇게 있습니다.
(빨리 졸업하고 배우의 길을 가고 있다는 의미인듯)
노래하는것도 춤추는것도 매우 서투릅니다.
나약해서 금방 화를 내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제 자신을 맞추는것에 자신있습니다.
「괜찮습니다」라고 자주 말합니다.
평생 함께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어요.
타임머신으로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적은 없습니다.
후회하고 있는것은 특별히 없습니다!
부디 먼 미래를 바라봐주세요!
(지금의 자신보다는 미래에 성공해 있을 카와에이 리나를 바라봐달라는 의미인듯)
잘 부탁드립니다.
----------------------------------------------
1.정말로 거절하지 못해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되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만약에 제가 서슴없이 제 생각을 내뱉어버리면, 성격이 나빠져버릴거라고 생각해요.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은, 「카와에이상은, 정말로 거절같은거 못하네」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고보니 저, 정말로 거절같은거 못하는것 같아요.
사소한것도 좀처럼 「NO」 라고 말하지 못하는 타입입니다.
예를들면 옷을 사러 갔을때에도
「이게 어울리는것 같아요~, 어떠세요?」 라며 점원이 옷을 추천해주면
「아...그럼 이걸로 할께요」라면서 그냥 사버려요.
그리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는데,
점원의 실수로 망고 주스가 나와버려도
「아, 저는 이걸로도 괜찮아요!」 라면서 마셔버리는 그런 타입입니다.
정말로 싫은것이라면, 노력해서 확실하게 거절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거절하지 않아요. 거절할때의 번거로움이랄까,
그래서 둥글둥글하게 살아가면 좋은거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버립니다.
대부분의 상황에 제가 맞춰버리면 되는거고, 굳이 욕심내려하지 않아요.
지금 내 자신이 손해보고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물론 어느정도 거절하는것도 분명 좋겠죠.
2.어른들이 싫어
「어른들이 싫습니다」 라기보단, 어른이라는 존재가 버겁다고나 할까.
모든 어른을 싫어하는것은 아니고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어른」이라는 전체적인 느낌을 생각했을때
「역시 싫어하는걸지도...」라고 생각해버립니다.
어린시절에 접해봤던 어른들이라면 부모나 친척들,
그리고 학교 선생님정도였지만,
AKB48 주위에는 어른들 천지였어요.
AKB48이라는 여자아이들의 세계를 만드는데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것은 물론 어른들로,
그분들이 없었다면 우리들은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걸 잘 알고 있고, 물론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좋든 나쁘던 여러가지 생각이 뒤죽박죽 섞여있는것이라고,
냉정하게 바라보는 제 자신도 있습니다.
가장 싫어하는것은, 어떤 의도를 잘 감추고 있는것 같으면서도, 그것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어른입니다.
그런 유형의 사람들은 대개 우리들 앞에서는 항상 싱글벙글 웃고, 분위기도 잘 띄우고, 좋은 말만 하죠.
그렇지만 저에게는, 그런 미소가 의도적으로 만든 미소라는것을 어째서인지 알아채버려요.
그래서 그럴 때에는 저도 그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호감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미소를 지어보여요.
속으로는 「이사람 힘들구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말이죠(웃음).
방금 말씀드렸던것이 어른들의 처세술인것처럼,
이것이 바로,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저에게 있어서도 제 자신을 지키는 방법입니다.
그런 어른들을 보고 있으면,
「이런저런것들 때문에 힘든걸까나」 라고 생각하곤 해요.
피곤하니까 뒤에서 험담을 한다거나,
필사적이니까 그 장소 그 자리에서 말을 자주 바꾸거나 하는거라고 말이죠.
20살이 된지 얼마 안되었을때에는, 「드디어 어른이 되는거구나」라고 생각했었지만,
마음은 지금도 여전히 17살 정도에 머물고 있어요.
아기가 「1」이고 어른이 「5」라고 한다면, 지금의 저는 「2.5」정도에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살이 되었을때보다도, 21살이 되고 있는 지금이
「어른」이라는것을 더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이제 더이상은 변명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나 할까,
「이제 누가봐도 어른이잖아!」라고 츳코미를 날릴것만같은 그런 느낌이에요.
아직 아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어른에 가까워지고 있는 나에게 한마디 해보자면
「지금 생각하고 있는것을 잊지말고 나아가세요. 그 상태로 성장해주세요.」 정도이려나요.
3.고민할 때에는
고민은 혼자서 끙끙 앓지 않아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라인을 보내거나, 전화를 한다던가, 직접 만나서 상담을 받습니다.
상담은 두사람 이상에게 받는것을 추천. 장점은, 각각의 사람들에게 서로다른 조언을 받을 수 있다는것.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기 때무에 냉정하게 생각해서 스스로도 납득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도와줍니다.
예전에, 동시에 두가지 일을 제안받고 고민하고 있었을때,
요코야마(유이)상에게 「후회하지 않을 일을 선택하는것이 좋아」라는 말을 듣고,
어떤 일을 할지 결정했었던적이 있었어요.
역시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는것이 제일이라는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로 하고싶은것인지 그렇지 않은것인지는, 처음에는 몰라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잘할 자신이 없어도 조금이라도 신경쓰고 노력하고 있다면,
여러분도 일단 시도해보는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도전해보고 무리라면 또 다른것에 다시 도전하면 되는것이니까요.
주위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저는 AKB48을 쉽게 그만둔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연기 하나만 한다고 선언했는데, 앞으로도 분명 힘들고 괴로운일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해서 (AKB48을 졸업한것처럼) 시원스럽게 그만둬 버리면 정말로
흉해보일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쨌든 지금은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계속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4.「연애금지」와 연애관
AKB48은 연예금지이지만요...
들키지만 않으면 상관없다고(괜찮다고)생각합니다.
물론 들켜버리는건 안되겠지만요.
들켜도 상관없을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계속 사귀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비밀연애 하다가 걸렸어, 최악이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과는 사귀지 않는편이 좋습니다.
들켜버렸다면 스루하는방법밖에는 없겠죠.
두사람 모두 연애금지라는걸 알고 있다면,
그리고 어느정도 그것에 대한 각오도 되어 있다면,
사귀어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저는 지금까지 푹 빠져벌정도로 누군가를 좋아해본적이 없습니다.
친구로 사이좋게 지내는것이 즐겁기 때문에, 연애감정같은걸 가지지 않았습니다.
동급생과의 연애같은 그런것에도 전혀 설레지 않고,솔직히 전혀 부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비슷한 연령대 친구의 불평 불만이나 듣고 있으면
「왜 이런놈이랑 사귀고 있는거지?」라고 생각하게 되어버려요.
그렇지만 연기를 하는데에 있어서, 연애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운동을 잘하는 인기있는 타입을 좋아했습니다.
축구를 잘하는 멋진 아이, 같은 타입말이죠.
지금의 이상형은, 같이 있어주면서 재미있는 사람입니다.
연애금지가 풀렸다는것에 딱히 의식하지는 않고 있지만
막연하게나마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스물일곱살즈음에 결혼을 해서, 평범한 가정을 가지고 싶습니다!
아이들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남자아이 두명에 여자아이 두명, 이렇게 4명정도를
가져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예의바르고 밝고 명랑한 아이들로 키우고 싶습니다.
핸드폰만 만지작거리지 않고 밖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이면 좋겠어요.
장래에, 만약 제 아이가 AKB48에 들어가고 싶다고 한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는것이 좋아」라고 조언해줄거에요.
제 아이가 정말로 하고싶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적극적으로 찬성하지만은 않을것같아요.
그도 그럴게 아이돌은 엄청 힘드니까요.
5.후회없는 인생을
당연히 오래 살고 싶지만, 단명해버리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련이 남는, 후회할 인생은 살고싶지 않습니다.
만약 이대로 뚜렷한 목표없이 헤매면서 AKB48에 머무르다가 스물 다섯살즈음에
몸이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라고 상상했더니,
지금 당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게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
6.취미랄까, 좋아하는것들
좋아하는것, 싫어하는것,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것.
이렇게 세가지가 있는데, 저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것들이 가장 많은것 같아요.
조건이 없다고나 할까,대부분의 것들은 그냥 용납해버린다고나 할까
그 다음으로 많은것이 싫어하는것들로, 가장 적은것은 좋아하는것들입니다.
그렇지만 되도록이면 좋아하는것들을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예전에 어딘가의 인터뷰들에서 「취미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었는데,
솔직히 이런 질문들을 받을때마다 항상 곤란했었습니다.
산책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이게 과연 취미인걸까?
애초에 취미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에 빠져버리곤 했습니다.
산책을 할때에는 카메라를 자주 가져가기는 하지만
취미라고 말 할 수 있을만한 특별한것도 딱히 없고 말이죠...
어슬렁 어슬렁 정처없이 걷는것을 좋아합니다.
자주가는 코스같은것도 없이, 날씨도 시간도 상관없이
산책이 하고싶다고 생각되면, 밖으로 나가곤 합니다.
걷고있을때만큼은 머릿속에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시간은, AKB48의 사이좋은 멤버들과 함께 있을때입니다.
지금도 가끔씩 만나서 그날 있었던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딱히 혼자있는 시간이 싫은것도 아닙니다.
집에 있을때에는, DVD로 영화를 자주 봅니다.
7,8개를 한번에 빌려서 단숨에 보는데, 재미없다고 생각되면
도중에라도 바로 꺼버리고 다음 영화로 넘어갑니다.
좋아하는 장르는 사이코패스계열입니다.
소노 시온 감독님의 영화를 가장 좋아합니다.
가장 좋아하는것은 「두더지(한국명)」라는 영화인데요,
「차가운 열대어」라는 작품도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어릴때부터 공포영화를 아버지와 자주 봤었기때문에, 공포 영화에 강합니다.
그렇지만 한밤중에 갑자기 떠올라서 「그냥 안볼걸 그랬어...!」라면서 후회할때도 있습니다(웃음).
평상시에는 별로 드러나지 않는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나
인간이 두려워하는 그런것들을 그려내는 작품에 끌리는것같아요.
비슷한 이유로 마이클 로젠이라는 작가의 「어려운 책」이라는 그림책도 좋아합니다.
서점에서 제목을 봤을때부터 신경쓰이던 작품이었는데,
멤버중에 한명이 저에게 생일선물로 사줬어요.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어떤 슬픔에 잠겨 있는지를 담담하게 그려내는
「사실은 슬프지만, 행복한척 하는거야」라는 대사와
거기에 곁들여지는 생긋웃는 미소가 마음을 울렸습니다.
즐겁고 밝은 분위기의 이야기들보다,
왠지모르게 슬프고 어두운 이야기에
좀 더 눈길이 가는것 같아요.
나란 사람, 역시 어두운 사람...
7.바보라고 불리우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어릴때부터 줄곧 좋아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메챠메챠 이케테루」는 가장 좋아하는 방송중에 하나였죠.
출연이 결정되었을때 스스로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굉장히 기뻤습니다.
처음 출연한것은 2013년 4월에 방송된 「AKB48 기말테스트」 기획이었는데,
멤버 14명, 그리고 킨타로상(개그우먼)과 함께 출연했습니다.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의
학력 테스트를 받고 누가 가장 성적이 나쁠것인가, 일명 「센타 바카」를
뽑는 그런 기획이었습니다.
오오시마 유코상,시노다 마리코상,와타나베 마유상,다카하시 미나미상 등등
말 그대로 주력 멤버들이 엄청 나가는 상황에 제가 거기에 끼어있었던거에요.
엄청 수상했지만, 「뭐, 공부를 싫어하는 타입이라 불린걸까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메챠이케」에 출연하게 된것은 엄청 기쁘지만, 어떤 멤버와도 친하지 않은
제가 낮은 순위를 차지하게 되면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 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테스트를 보니까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습니다.
문제를 풀다가 「팟!」하고 답이 떠오른 경우도 제법 많았습니다.
그래서 내심 「이거 해볼만 한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졌었지만...
답을 맞추는 도중에 「조금 위험할지도...」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만일 유명하지 않은 내가 꼴찌를 차지하게 되면 「꼴찌한 멤버가 도대체 누구야?」라는
분위기로 흘러가서 방송 흐름을 망칠지도 모르니, 이럴때 바로 「어른들의 힘」이라는게
발휘되어서 인기멤버가 최하위를 차지하게 될거야. 라고 순간 안심했었습니다.
그런데 설마했던 꼴찌가 바로 저였던거에요.
(꼴찌라는것을)알게된 순간 정말로 부끄러웠습니다!
나같은건 세간의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고...
「누군지 모르겠지만 처음 등장한 바보 캐릭터」가 되어버린거잖아요...
「우소다로가!」는 정말로 그 당시의 솔직한 심정에서 비롯된 대사입니다.
미디어의 영향력이 정말로 대단하다는걸 새삼 깨달았었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길을 가다가 누군가가 저를 불러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그나마도 「릿짱」이라는 별명으로 불러주신게 전부였거든요.
그런데 메챠이케가 방송된 이후 「카와에~!!!」라고 불러주시는 경우가 엄청 많아졌습니다.
그렇지만 거부감이 느껴진다거나 그런건 전혀 없었고, 그것보다 오히려
제 자신이 갑자기 엄청나게 유명해진것같이 느껴져서 기뻤어요.
공부를 못하는건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이니까 바보라고 불리우는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공부 이외의 부분에서 봤을때 저는 충분히 머리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진짜 바보는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일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거나,
분위기 파악같은것들을 못하는 사람이 진짜 바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은 되고싶지 않습니다.
「센타 바카」로 불리게 된 이후에 이런저런 예능 프로그램에 많이 출연할 수 있었습니다.
(방송을)수록할때의 저는 일명 「버라이어티 모드」로 방송 수록에 돌입합니다.
저만의 스위치를 켜서 집중하며 밝고 긍정적인 면들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버라이어티는 언제 어떤 타이밍에 이야기를 해야할지 몰라서 항상 긴장하고,
대화의 흐름을 읽어야 하므로 항상 높은 텐션으로 수록에 임하는데, 덕분에
수록이 끝나고나면 저는 항상 파김치가 되어버리곤 했죠.
뭔가 의도했던 그런 이미지는 아니었지만,
필요하다면 바보 캐릭터든 어떤 것이든
최선을 다하지 않고서는 못베기는 그런 타입이랍니다!
8.카와에이 집안(家)
카와에이 집안은 아버지, 어머니, 언니, 나, 그리고 5마리의 애완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활동적이신 아버지는 낚시를 좋아하셔서, 어릴때에 종종 저를 강에 데려가주시곤 하셨습니다.
언젠가 눈이 왔었을때 미끄럼틀을 만들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제가 밖에서 놀기를 좋아하는건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손재주가 매우 뛰어나셔요.
초등학교때 목재를 사다가 강아지 집을 만들어주신적이 있는데,
제가 그걸 보고 아버지를 흉내내서 남은 목재와 못으로 침대를 만든적도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에게 크게 혼난적은 딱히 없었던것 같아요.
어머니는 저란 존재를 궤뚫어보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것 같아요.
초등학교 5학년때에 춤을 배우는것이 유행했었는데,
그 유행에 휩쓸려서 저도 어머니한테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너랑은 별로 안맞는거 아니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무리해서 잠깐 배워보니까
확실히 전혀 저와는 맞지 않았고, 결국에는 금방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시곤 「거봐 그럴거라고 했지?」 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지만 정말 제가 하고 싶어하는것이라면 뭐든지 시켜주셨고
「이왕 하는거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해라」라고 자주 말씀해주시곤 하셨는데,
어쩌면 어머니는 제가 정말 하고싶어하는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평소에 학교에 관해서도, 친구에 관해서도
집에서는 그다지 말하지 않는 타입인데,
제 모습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다고 느껴지면 바로 눈치채시고,
선생님에게 몰래 연락하시곤 하셨습니다.
지금도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엄마.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곤란한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합니다.
이전에도 곰인형을 만드는 설명서를 아무리 봐도 이해가 가지 않길래
엄마한테 부탁드렸었던 기억이 납니다.
중요한것에서부터 사소한것까지 정말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상담하고 있습니다.
4살 위의 언니는 활발하고 남자아이들과 놀것만 같은 그런 타입입니다.
저는 내성적이고 얌전한 성격이지만 언니는 말하고 싶은건 뭐든지 즉시 말해버리는
강한 성격이기때문에 주변에서 저희 남매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남매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집안에서 마주치면 싸움뿐이었죠.
둘이 방에 책상을 나란히 하고 있었는데, 싸움을 하고 나면 언니는 제가 없을때 제 책상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고 어딘가로 가버립니다.
상황을 파악한 뒤에 저는 곧바로 제 책상을 정리하고 언니가 했던 그대로 되갚아 주곤 했습니다.
「이번에는 언니가...」라는 패턴의 무한 반복.
그리고, 마지막은 항상 「엄~마~아!」라고 소리지르며 고자질하는것으로 종료.
그랬던 우리 남매의 사이가 좋아진것은 제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 무렵, 저는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지 않던 까닭에 좋아하는 옷을 마음대로 살 수 없어서
몇가지의 옷들만 계속해서 「헤비 로테이션」하고 있었습니다.(같은 옷만 반복해서 입는다는 의미)
그래서 제 친구들에게 저는「이 녀석, 항상 같은 옷만 입고 있어...」라고 생각되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언니가 고등학생이 되자 아르바이트를 해서 저에게 옷을 사준거에요.
그래서 의외로 상냥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웃음).
그 이후로 지금은 사이가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빼먹을 수 없는 다섯마리의 강아지들.
카와에이 집안에 강아지가 생긴것은 제가 초등학교 6학년때쯤입니다.
그 아이를 데리고 슈퍼에 갔을때 우연히 만난 사람으로부터 받은게 두마리째.
용돈을 열심히 모아서 데려온게 세마리째. 그리고 그녀석의 새끼가 네마리째.
모두 사랑스럽지만, 제가 용돈을 모아서 데려온 3번째 아이가
저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가장 사랑받는 녀석입니다.
그리고, AKB48을 졸업한 이후에, 다섯마리째를 기르게 되었습니다!
강아지 가게에 가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드물게 언니가 「귀여워!」라고 몇번이나 말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네마리나 다섯마리나 그게 그거지!」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셨구요(웃음).
그 강아지의 엄마 이름이 「리나」였다는것에도 뭔가 운명인가 싶어서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가족들과 그렇게 멀리 떨어져있지 않아서,
혼자 살고 있어도 그렇게 외롭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가족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함께 지낼때에는 물론 서로 충돌하던 순간도 있었지만,
함께 지내다가 떨어지고 나니까 알게된 그런 고마움이 역시 많다는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 모두에게는 몇번이고 감사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정말로 항상 감사합니다.
9.다사다난했던 어린시절
돌이켜보면 저는 상당히 경솔한 아이였던것 같아요.
예를 들면 콧구멍에 이것저것 집어넣었다던가
다리미가지고 장난치다가 구급차에 실려갔다던가...
작고 동그런 셀로판 테이프를 어딘가에서 잃어버렸는데,당황해서 울어버린적도 있습니다.
그때는 이미 초등학교 4학년이어서, 엄마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혼자서 해결하려고
엄청나게 노력했었습니다.
폭죽을 콘크리트 근처에 쏴서 콘크리트 주변이 하얗게 변해버린것이 신기해서
만져버렸더니 바로 화상을 입은적도 있었어요.
그때는 혼나는것이 무서워서 몰래 차가운물로 손을 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결국에는 들켜버렸지만요...
그럴때면 언니는, 어떤것이든 저보다 먼저 사실을 말해서 면죄부를 받는데,
저는 항상 한발 늦어서 필사적으로 감추려고 했었지만 걸리고, 혼나버리는거에요.
저는 항상 그랬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고 계시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란도셀을 내려놓자마자 밖으로 놀러 나가곤 했습니다.
친구들과 술래잡기라던지 깡통 차기를 하면서 힘차게 놀러다녔어요.
그런 관점에서 볼때 정말 어린이다운 어린이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머니가 직장에서 늦게 돌아오시는 일도 많았기에,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에는
언니와 함께 저녁을 만들어서 먹고는 했습니다.
지금도 종종 시간날때 요리를 할 수 있는 것은 그 무렵의 추억과 경험 덕분이에요.
참고로 잘 만드는 메뉴는 볶음밥입니다. 단골 재료는 계란과 햄, 치즈 그리고 파입니다.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싫어하는 먹을거리는 피망, 완두콩, 그리고 배입니다.
어릴적에 싫어하는 음식이 나왔을때는 먹은척하고 휴지에 몰래 뱉어서 버리곤 했습니다.
이 수법은 한번도 들킨적이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장난은 엄청 쳤던것에 비해서, 의외로 적극적인 발언은 하지 못하는 아이였던것 같습니다.
학교에서도 적극적으로 발언하지 않았고, 몸상태가 좋지 않아도
「괜찮아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그놈의 「괜찮다」는 입버릇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것 같네요...
그런 성격이 확 바뀐무렵은 초등학교 5학년때입니다.
도쿄에서 전학온 전학생이 선생님에 대해서「완전 재수없어!」라고 말해버렸을때였습니다.
살면서 그렇게 한번에 날카로워졌던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무렵의 저는 굉장히 성격이 나빴다고 생각합니다.
말투도 거칠었고, 남자아이들과도 종종 싸우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 반 친구들 모두 전체적으로 반항기(사춘기같은 느낌?)였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까지 변했었다는걸 제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했던것 같아요.
운영위원회라는 학생회 비슷한 그런 팀이 있었는데,
「나도 충분히 할 수 있겠는데?」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에 힘입어서 입후보했었던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엄청 무서운 분이셨는데,
항상 숙제를 해오라고 하셨는데 매번 제때 제출하지 못해서 항상 혼났었습니다.
숙제라던지 그런것들을 기한에 맞춰서 하지 못하는 타입이었던것 같습니다.
여름방학 숙제같은 경우, 마지막 날에 서둘러서 끝내는것이 아니라
새학기가 시작되고 나서야 끝마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얼마동안은 「집에 놓고 왔습니다...」라고 얼버무리면서 말이죠.
독서 감상문같은 경우는 후기를 잔뜩 읽고 난 뒤에
「~이런 느낌의 이야기겠지」라고 생각, 추측하면서 쓰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강아지가 등장하는 책이라면 「저는 개를 엄청 좋아하는데...」
라는 식으로 시작하면서 중간에 그냥 제 경험담같은 이야기로 바꿔치기 합니다.
그래도 그때는 공부 자체가 그렇게 싫지는 않았는데 말이죠.
단지 예외로 수학같은 경우에는 4학년때 문제의 정답을 알지 못해서
정답을 발표하지 못한 이후 눈물을 쏟을 정도로 혼나고, 싫어하게 되었지만 말이죠.
그 이후로, 더 이상 수학과는 친해질 수 없었습니다.
10.새가슴
어른들이 싫은것처럼(어른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운것처럼)
선배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1대1 상황에서 대부분의 선배들은 친절하지만,
여럿이 모여서 집단이 되어버리는 순간,
왠지 모르게 갑자기 무서워집니다.
그 시작은 초등학교 6학년때입니다.
1살 위인 중학교 1학년 선배와
싸움을 하게 된 것이 그 계기입니다.
공원에서 놀고 있던 저를 (선배가) 계속 쳐다보고 있길래
「뭘 그렇게 보는거야!?」라고 발끈해버렸습니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사실은 저를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당시의 저는 걸핏하면 싸워버리던 시기라서 사정따위는 무시한채 그냥 냅다 싸워버린거에요.
아무래도 그 사건을 계기로, 중학교에 입학한 뒤로 일제히 선배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소속되어 있던 테니스부의 한 선배가 「저 녀석은 실은 좋은 녀석이야」
라고 말해준 덕분에 대략 반년만에 이미지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강해보여도 속은 새가슴이기 때문에 내심 굉장히 겁먹고 있었어요.
AKB48이라는 여자아이들의 집단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에도
무서워서 어쩔줄을 몰랐었어요.
그때는 지금보다 선후배간의 관계가 상당히 엄격했었기 때문이죠.
선배로부터 빌린 의상읜 핀을 잃어버리거나 옷걸이에 의상의 위치를 바꿔 걸어놓으면
즉시 지적받았고 무대에서 안무를 틀리거나 하면 「그게 아니잖아」라고
엄청난 기세로 지적을 받고는 했습니다.
역시 새가슴인 저는 연구생 시절에는 감히 목소리도 내지 못했었습니다.
어쨌든 선배들의 신경을 거슬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대기실에서 가능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있었습니다.
원래부터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었고,
절대로 제가 먼저 선배들에게 말을 거는
타입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의 이런 어려움 덕분에
정신적으로 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선배들은 어려워하지만, 반면에 후배들은 엄청 아끼고 사랑합니다!
중학교때도 동아리가 끝나고나면 후배들과 이리저리 놀러다닌적도 많았고,
AKB48시절에도 대기시간에 꼬마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면서 놀았었습니다.
어쩌면 제 정신연령이 어렸던 탓일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저에게 있어서 선배란, 어렵지만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11.혼나고 싶지 않아!
스스로 강력하게 무엇인가를 하고자했던것들이 제 인생에서 그렇게 많지 않은데,
테니스가 바로 그 중에 하나였습니다.
처음 배웠던건 초등학교 4학년 무렵.
그리고 5학년때 그만뒀었는데, 중학교에 들어가서 테니스부에 들어감으로써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담당 선생님이 매우 엄격하고 연습도 힘들게 시키는 분이셨어요.
시키신걸 저희가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화가나서 돌아가시고
1시간 정도 뒤에 다시 돌아오시면 저희가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는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아직 멀었어...」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돌아가려는 선생님을 쫒아갔습니다.
의자를 던지는 경우도 있을정도로 험난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저도 필사적으로 했던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기 싫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노력했던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테니스 자체를 매우 사랑했기때문에 계속 할 수 있었던것 같아요.
초등학생 시절부터 해왔던 테니스인지라,
동아리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경기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복식 파트너가 잘해주었던 덕분에 도시 대회에서 우승한적도 있었습니다.
평상시의 저는 그다지 짜증을 내는편이 아니지만, 테니스를 할때만큼은 달랐습니다.
후배에게도 평소에는 상냥하지만 「지금 따라잡힌다고!」와 같은 말들을
큰소리로 내뱉곤 했었습니다.
훈련도 있었고, 학교도 다니고,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열심히 살았던것 같습니다.
혼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열심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열심히 했던
제 자신이 밉지는 않네요.
12.처음으로...
중학교 3학년때 가나가와현을 탈출하여 처음으로 도쿄에 갔었습니다.
어머니는 "도쿄는 위험하니까 가면 안돼"라고 말씀하셨지만,
친구와 몰래 기차를 타고 가버렸어요.
그 무렵에는 용돈을 받지 못했던 시절이었는데, 세뱃돈을
야금야금 저축해서 상당히 계획적인 탈출을 했었습니다.
향한곳은 하라주쿠.
그렇지만 그렇게 쉽게 돈을 써보거나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옷을 사거나 그런것도 아니고, 그저 걸어다니거나 크레이프를 사먹는 정도였습니다.
처음 방문한 하라주쿠는 정말 사람이 엄청 많아서 깜짝놀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문으로만 듣던 도쿄구나....라며 압도당해버렸습니다.
수박 겉핥기 수준이었지만, 만족했던 모험이었습니다.
13.연기와의 만남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했던것은 유치원의 학예회였습니다.
나비역할이었습니다.
분명히 추첨으로 정해진 역이어서 주인공 역할은 따내지 못했지만
의상이 귀여우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었던것 같아요.
그리고 그 외에는 특별히 기억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학예회라던가 그런곳에서 말이죠.
AKB48에 들어갈때까지 연기에는 보통 사람들보다 재능도 없었고,
흥미도 없었습니다.
첫 드라마는 「마지스카 학원2」인데요.
그렇지만 많은 멤버들 중에 한명으로 출연했기때문에,
솔직히 연기를 한다는 실감은 제로였습니다.
그것보다, 시노다 마리코상이나 와타나베 마유상등 당시에는
좀처럼 만나기조차 쉽지 않았던 인기 멤버들과 만날수 있었다는것이
기뻤습니다.
연기만의 즐거움에 처음을 눈을 뜨게된 계기는 「아리요시AKB공화국」에서
배우인 오카모토 노부토상과 영화「전학생」의 패러디
「카와에이가 노부토로 노부토가 카와에이로」를 찍었을 때였습니다.
코미디라는것 자체가 처음이었을뿐만 아니라,
콘티를 보여주고 대본을 외운다는 본격적인 흐름또한 처음이었습니다.
그 뒤로, 게닌들과의 콩트가 점점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콩트라고 해도, 대본도 있고 때로는 애드리브가 요구됩니다.
무엇보다 「게닌들은 모두 연기가 뛰어난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연기를 좋아한다고 깨닫게 된 시점은 「SHARK」라는 드라마에 출연했을때.
제 역할은 밴드의 보컬이었던 주인공의 소꿉친구로,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여학생이었어요.
48멤버는 저 혼자뿐이어서, 처음으로 혼자서 멤버들과 함께하지 못했던 일이었던같아요.
게다가, 캐스팅 대부분이 남자여서 낯가림이 심한 저에게는 더없이 힘들었던 현장이었습니다.
게다가, 감독분들중에 한분은 매우 엄격하셔서 「완전 글러먹었어」「오늘은 20점」이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는데, 새가슴인 저는 무서워서 그저 떨고만 있을뿐이었어요.
그렇지만 크랭크업(촬영 종료를 뜻함)때 그 감독님께서 「잘했어」 라고 칭찬해주셨을때,
지금까지 맛본적 없던 성취감을 맛보았습니다.
항상 불안해서 긴장하고, 대기시간에도 좀처럼 다른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해서 주위 사람들을 걱정시켰던건 아니었을지...
그렇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연기를 하는동안만큼은 정말로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연기라는것을 하고싶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것이
「미안해 청춘!」이라는 학원 드라마였습니다.
오디션에서 무슨역할인지도 설명받지 못한채, 쿠도칸쿠로상에게 「여자였죠?」
「양키였었나요?」라는 질문을 받은것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결국 받게된것은 남자아이같은 말투에, 이성을 쉽게 잃는 여고생역할.
원래 입이 거칠고, 목소리도 큰 편이어서 하기 쉬울것같다고 생각했었습니다(웃음).
물론 평소의 저는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말수가 적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는것들을 왠만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인물을 연기할때에는 엄청 말을 많이 하는편인데,
그럴때마다 「이런 감정도 있구나」라는것을 느낍니다.
배우는 맡은 역할에 따라 어떤 사람이라도 될 수 있고,
역할 각각의 여러가지 감정을 이해할 수 있어야합니다.
「카와에이 리나」로서는 말할 수 없는것들과 할 수 없는것들도,
인물을 연기할때만큼은 할 수 있을것만 같은 느낌으로 연기하는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연기를 하는것이 좋습니다.
더욱더 연기에 대해서 알아가고 싶을뿐더러,
어중간한 느낌으로는 하고싶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AKB48을 졸업해야 한다고 생각했던것입니다.
14.첫 연극
배우라고 불리우는것이 뭔가 쑥쓰러워요.
저는 「배우가 되고 싶다」라고 말하지 않고
「연기가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배우라는 수식어는 저에게 아직 맞지 않는다고나할까,
뭔가 쑥쓰러워지는 그런 느낌입니다.
그동안 저는 특별히 하고싶다고 생각했던것도 없고,
남들처럼 흘러가는대로 살아왔었습니다.
그런 제가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서 하고싶다고 생각했던것이 바로, 연기였습니다.
「미안해 청춘!」을 촬영하면 할수록, 「나는 AKB48라는 간판때문에 연기를 할 수 있는건가」,
「이걸로 괜찮은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열등감에 빠져버린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AKB48로서 연기 이외에도 여럭가지 일을 하고 있었고,
이것은 엄청난 축복이고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도 배우가 연기 하나에 열심히 집중하는것처럼,
연기에 몰두하지 않으면 점점 뒤쳐지고 말거라고 생각했습니다.
AKB48을 졸업할때 「연기를 하고싶어요!」라고 선언한것은
다시는 이곳으로(아이돌 세계로)돌아올 수 없도록 자기 자신을
강하게 몰아붙인감도 없지않습니다.
「바보」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저를 보면 아마 믿지 못하시겠지만,
의외로 대사를 외우는게 남들보다 빠른 편입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암기같은건 간단히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시험이 끝나면 금방 잊어버렸지만 말이죠...
대본을 받으면 우선 여러번 읽어보고,
상대역의 대사를 녹음합니다.
그것을 재생하고 반복 연습하는것이 저만의 암기법입니다.
대사를 외우는 장소는 무조건 집입니다.
제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를 볼때는 기본적으로 반성하는 시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잘했다고 생각했던적은, 없습니다.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움직임과 영상으로 보는 실제의 움직임이
서로 다를때가 있는데 굉장한 공부가 됩니다.
제가 현장에 없었을때의 장면들은 「아아, 이런식으로 할 수도 있구나」라던가,
「나라면 이렇게 했을텐데, 저런방식도 있었구나」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다른분들의 연기에서 많은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미안해 청춘!」은 같은 또래의 배우들도 많았지만,
라이벌 의식을 가진다기보다는 우선 배우려는 마음가짐뿐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배우」란 굳이 대사로 내뱉지 않아도,
표정과 몸짓으로 모든것들을 표현해낼줄 아는 사람.
지금은 아직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장르불문하고 이런저런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언젠가 연기하고싶은 역할중에 하나가 바로 「크레이지」한 역할입니다.
그런 역할들에 진심으로 매료됩니다.
아이돌에서 여배우로 변신한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미츠시마 히카리」상도 아이돌 이미지에서 탈피하는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걸로 기억합니다.
이도저도 아닌 마음가짐으로 할 수 없다는것쯤이야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AKB48의 카와에이 리나」였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었습니다만,
앞으로 「"AKB48"이라는 간판이 없을때 혼자 잘 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많이 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엄청나게 후회했을거라는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스무살입니다.
여배우로서 자리잡는데 5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겨우 스물 다섯인것입니다.
15.칭찬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들었을때 기분좋은 말은
「상냥하시네요」입니다.
「귀여워요」라는 말은,
듣게 되더라도 그다지 기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누구라도 예의상 해줄 수 있는 말이잖아요.
「귀엽다」라는건.
게다가 귀여운 아이들이 좀 많아야 말이죠.
----------------------------------------------
16.마유상은 완전 프로 그 자체
AKB48에서 존경했던 사람은, 마유상(와타나베 마유)입니다.
어떤 순간에도 완벽함을 잃지 않는다던가,
아무튼간에 아이돌 그 자체입니다.
열심히 하려고 하는 순간이 있어도,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가면 「더이상은 무리야!」라고
외치는 순간이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피곤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이면
그것이 표정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말이죠.
그런데 마유상은, 그런모습을 절대로
우리들앞에서는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프로의식이 다른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닮고 싶습니다.
17.내일 죽을지도 모르는거잖아요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생각하는 도중에
피할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2014년 5월 25일, 「전국 악수회」라는 이벤트가
이와테현에서 개최되었습니다.
그 이벤트의 진행중에, 저랑 안닝(이리야마 안나), 그리고 남성 스탭분.
이렇게 3명이 톱을 가지고 있던 괴한에게 습격당했습니다.
저는 오른손 엄지부분에 상처를 입어서 약 5개월동안
극장공연을 쉬어야만했습니다.
일에 관해서 이야기한적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저에게 있어서 이 사건은 어떠한 큰 결심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의외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사건이 일어났던 순간,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 순간에 어떤일이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마 저보다도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더욱더 놀라고 무서웠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얼굴은 보호해야되!」라고 생각했던것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피투성이인데도 불구하고
「얼굴은 괜찮은거야? 다친곳은 없는거지?」라면서
얼굴을 확인했었습니다.
제 오른손에서 피가 엄청 흐르고 있었지만,
호러 영화를 좋아하고 피를 보는게 익숙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제 자신은 그다지 패닉상태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보다도, 피보다도 제가 더 무서워하는것은 바로 아픔(고통)입니다.
AKB48에서는 정기적으로 예방 접종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저는 주사 맞는걸 굉장히 싫어해서 「맞았습니다」라고 속인다음에
도망친적이 있을정도로 아픈걸 싫어합니다.
오른손이 정말로 너무 아파서, 구급차 안에서
「정말로 아프니까 건들지 마세요! 진짜, 정말이에요!!!!」라며
반쯤 이성을 잃고 울면서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뭐, 어쩔 수 없죠」
이것이 바로 그 사건에 대한 저의 솔직한 심경입니다.
세상에는, 어떤 나쁜짓도 하지 않고 착실하게 살아가던 사람이
갑자기 길에서 나쁜 사람에게 살해당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뉴스를 보면서 「나는 절대로 저기에 해당되지 않으니까 괜찮아」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날, 제가 바로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버린거에요.
「나, 전혀 안전하지 않았구나...」라며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아버렸습니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해보자면,
내일 어떤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혼자 끙끙 앓으면서 고민하지 말고,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자고
활동을 쉬는 도중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연기쪽으로 나아가야겠다는 확실한 계기를 마련해준 드라마 「미안해 청춘!」의
촬영이 시작된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2015년 3월에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렸던 콘서트에서 졸업을 발표할때,
원래는 일(연기)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을 예정이었습니다.
팬분들이 「고작 연기때문에 졸업을 결정했다」라고 생각하시지 않도록 하는것이
좋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일을 결의 할 수 있었다는것 또한 저에게는 중요한 사실입니다.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제 마음가짐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모두에게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8.운세에 따르면
예전에 긴자에서 봤던 운세에 따르면
「이름의 획수가 좋으니까 뭘 해도 괜찮을꺼에요!」라고 들었는데,
그 말을 아직까지도 믿고 있습니다.
최근 이런저런곳에서 점을 보면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에 적합한 시기입니다」
「그렇지만, 질병과 부상, 그리고 금전문제는 조심하세요」라고 합니다(웃음).
돈 관리는 어머니에게 상담해보는것이 좋을것 같네요.
19.면접 마스터
AKB48의 오디션을 본것은 고등학교 1학년때였습니다.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서 보게되었죠.
AKB48은 당시 이미 상당히 인기있는 상황이었는데, 학교 반 아이들 대부분이
호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방에 열쇠고리를 달고 다니면서
「앗짱, 귀여워!」라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사실 친구의 꾐에 넘어가서 오디션을 보게된것은 그때가 처음은 아닙니다.
또 다른 친구의 추천으로 오디션을 봤었는데
그때는 용돈조차 받지 못하던 시절이라 프로필용 사진을 직접 현상하는것과,
우표와 봉투를 살 돈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아르바이트도 하고있엇으므로 「AKB지원해보지 않을래?」라는 질문에
「좋아!!」라고 즉답해버렸습니다.
주위의 친구들처럼 AKB48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아이돌이 되고싶다는
생각또한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 도쿄에 놀러갈래?」 「좋아!!」같은 가벼운 느낌으로
오디션에 응모했었습니다.
어차피 합격할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물론 어머니에게는 비밀로 하고 응모했었습니다.
전신사진과 증명사진을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해서 현상한 다음에 직접 서류를 제출했습니다.
친구와 둘이서 같이 서류를 응모하러 가고, 면접도 같이 보러갔었지만,
그 친구는 떨어져 버렸고, 결국 최종심사에는 저만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착한 친구입니다. 정작 자신은 떨어졌는데도 「열심히 해!」라고 응원해주었습니다.
그녀와는 지금도 좋은 관계로 남아있습니다.
최종심사때에는 언니까지 도쿄에 따라와주었습니다.
최종 면접만을 남겨둔 상태였는데
그 때에도 역시 합격할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니에게도 비밀을 약속받았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향했던 도쿄인데 최종심사까지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노래를 하라고 했을때는, 정말로 긴장했었습니다.
참고로 그 당시 불렀던 노래는, 「오오고에 다이아몬드」
노래는 매우 긴장했었지만, 면접은 꽤나 시원시원하게 봤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수험생 시절때도 그랬었지만, 저는 면접에 꽤나 자신이 있었던것 같아요.
물론 어디까지나 그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는 겁니다.
「AKB48에서 누구를 가장 좋아합니까?」
「마에다상입니다!」
「마에다상의 어떤부분을 좋아하십니까?」
「기운넘치고 밝은 부분을 좋아합니다!」
라고 말하자 제 대답을 들은 심사위원분들이 전부 웃었습니다.
「마에다상이 그렇게 보이나요?」
「언제나 싱글벙글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에다상은 전혀 그런 이미지가 아니었는데 말이죠...
나름대로 긴장하고 있었지만,
일단 뭐든지 시원시원하게 대답해버리는것이
저만의 전략이었습니다.
이래뵈도, 진심으로 다가가면 통하는 타입이랄까요(웃음).
「아, 이렇게 하면 좋아해줄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웃는 얼굴로 대응합니다.
힘차게 대답하면 안풀릴 일도 잘풀리곤합니다.
한달정도 연락이 없었기 때문에, 떨어졌다고 생각했고 반쯤은 까먹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메일 주소도 바꿔버렸었구요.
그런데 어느 날 「오디션의 결과를 알려드려야하기 때문에, 메일 주소를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라고 집에 전화가 걸려온겁니다.
그 당시 저는 학교 문화제가 한창이었습니다.
「부모님한테 걸리면 어떻게!」라고 초조해하면서
「보통 이런건 메일로 연락오는거 아니야!?」
라면서 놀랐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받은 메일에는,
「합격」 이라는 두 글자가 적혀있었습니다.
20.노래도 춤도 완전 최악
「우와, 테레비에 나오는 사람이다!」
이것이, 첫 레슨날의 제 감상입니다.
아마도 이 날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예인을 만난 날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오디션에 합격한것을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더니 처음에는 믿지 않으셨습니다.
「거짓말하는거 아냐!?」,「뭔가 이상한데...」라고 말씀하셨던걸 기억합니다.
합격할리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왕 붙은거 조금 해보자」라는 그런 가벼운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조금만 하고 그만두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괴로웠던것은, 어쨌든 춤이 매우 부족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춤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초등학교시절 작심삼일로 금방 포기해버린 주제에 고등학교때
갑자기 댄스부에 들어가려고 시도했던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 바로 댄스부의 선배들이 완전 멋져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역시나 막상 춤을 춰보니,
여러 부원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어버려서
부끄러워서 그만 두어버렸습니다.
이런 저였기에, 두번다시 춤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또 다시 이렇게 춤과 엮이게 되다니....
처음에는 그저 우두커니 서있는게 할 수 있는것의 전부일 정도로,
그 정도로 춤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AKB48은 오디션에 합격하는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연구생에서 정규멤버로 승격해야하는데, 만약에 실패하면 「졸업」으로 연결됩니다.
제가 춤을 하도 못추다 보니까 스탭분들에게
「카와에이는 (이대로 가면)승격이 어려울것 같으니까 공연에 될 수 있는한 많이 나가서
경험을 쌓는게 좋겠다」라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당시 팀B의 마유상의 언더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팀K의 유코상의 언더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모든 안무를 외우는게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처음 무대에 섰을때에는 정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있었습니다.
그날 무대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내려보면
「최악...」,「정말로 그만두고 싶다」 정도?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에서, 게다가 위치도 가운데이고
「정말 부끄럽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즐거움이랄까 감동같은건 일절 없었어요!
그 당시에는 안무를 가르쳐주시는 선생님도 없었고,
DVD를 보고 스스로 모든 안무를 외우는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영상을 보면서 외우는 방식은 상대의 모습을 전부 반대로 외워야하기 때문에
그냥 배우는것보다 더욱 어려웠죠.
그중에서도 단연 최악으로 기억되는건 「Begineer」라는 곡이었습니다.
이 곡의 안무는 매우 어려운데, 다음 공연에서 이 곡을 선보이기로 했었는데,
결국 전부 외우지 못한채로 공연에 참가했었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저 못하겠어요!」 라고 필사적으로 말했는데,
매니저분께서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시고 「괜찮으니까 나가도 돼」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정말로 못한다니까요!」라고 말하면서 무대에 나가서 한번도 서본적 없는
위치에서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 울어버릴것같은 그런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그만두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한편, 주눅든것이 아니라 새가슴이기 때문에 침묵할 수 밖에 없는것이
왠지 저 다운 그런 모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웃을 정도로 춤에 재능이 없었지만 레슨을 받을 동안은
성실하게 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는
동기부여가 확실하게 되어있는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심히는 하는데,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는구나」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지금은 완벽하게 춤추는것이 가능하게 되었지만요.
물론 지금은 춤을 어느정도 출 수 있게 되었지만,
한번도 진심으로 즐거운것이라고 생각해본적은 없었습니다.
노래도 물론 마찬가지 입니다.
「좋아합니까, 아니면 싫어합니까」라는 질문을 듣게된다면
「싫어합니다!」라고 대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춤추고 노래했던 경험이 졸업 후 가졌던 첫 무대에서
빛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
21.피로와 짜증
「AKB48」이라고 하면 역시 아키하바라에서 열리는 극장 공연과 악수회 이벤트.
팬과의 거리가 가까운 일명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이라는 컨셉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악수회는 저에게 있어서 매우 힘들었던 이벤트였습니다.
그래도 처음에는 진심으로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임했었습니다.
악수하는 팬분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신의 인기를 직접적으로
실감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로 보면 무서운 것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악수회권이 많이 팔리면 기뻐서
생글생글 미소를 날리며 그야말로 「아이돌!」이라는게 뭔지 보여드리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렇게 (악수회라는 이벤트가)힘들게 느껴졌던걸까요...
제가 가장 인기가 급속도로 치솟았던 시절은 역시 「메챠이케」에서
「센타 바카」가 된 직후였습니다.
그때까지는 존재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상태였는데,
방송 출연을 계기로 응원해주시는 팬분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악수회 회장에서 「메챠이케에서 봤어!」라던가,「그 방송을 보고나서 팬이 되었습니다!」
라고 말씀해주시는분들이 많았고, 저도 기뻐져서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마음먹고 텐션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수 많은 악수회가 있을때마다 지나치게 텐션을 높였었던 탓인지
지쳐버렸었던걸로 기억합니다. 게다가 성격 자체도 원래 낯가림이 심한 저였구요.
매번 지나친 텐션업은 무리일것 같아서 평상시의 모습을 팬분들에게 보여드렸더니,
「텐션이 낮은거 아니야?」
「아뇨, 원래 이렇습니다...」
「테레비에서 보던거랑은 완전 딴판인데?」
「그런가요...」
「뭔가 소금대응이네」라고 점점 듣게 되더니,
왠지 모르게 제 텐션도 엄청 내려가서 그 뒤로 악수회에의 대응이
더욱더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실제로는 어떤 성격인지도 모르고)단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비춰진
저의 모습만을 기대하고 있는 팬분들과 항상 비슷한 패턴의 대화를 반복했던것입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저의 대응이 나빴던것이겠지요.
그래서 이런 저를 좋아해주시는 팬분들에게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버라이어티에서의 제 모습만을 보고 팬이 되어버린 분들과 악수회에서
비슷한 패턴의 대화만을 했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테레비를 보고 저의 팬이되어주신분들에게도
매우 감사한 마음입니다. 솔직히 기쁘기도 하구요.
뭔가 모순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비록 대응이 좋지 않았던 저였지만,
아이들에게만큼은 항상 카미대응이었습니다!
단순히 아이들을 좋아했던것도 있었지만,
특히 꼬마 여자 아이들에게는 한없이 착해지고 말았습니다.
너무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와락 안아버려서 오히려 직원분들에게
「그 이상은 안돼!」라는 소리를 들으적도 있습니다.
어른 팬분들, 그 때에는 정말로 죄송했습니다!
22.「괜찮습니다」
제가 습관처럼 내뱉는 입버릇은 「괜찮습니다」입니다.
「이걸로 OK!」 라고 할 때도,「아아 괜찬아요」,
「어떻든 상관없어」,「썩 좋지는 않지만 괜찮습니다」
「거절 할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죠 뭐」 라고 할 때도 있습니다.
결국에는 전부 「괜찮다」라는 뜻이에요.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중립적인 의미입니다.
AKB48은 여자 아이들로 이루어진 팀이다보니, 아무래도
의상에 집착하는 멤버들이 많이 있는 편입니다.
대단하다고 느끼는 와중에, 한편으론 저도 집착해버리면
매우 피곤해지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건 어떻게 처리하지...」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있으면 대답은 무조건 「괜찮습니다」.
물론 뒤끝같은건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절대로 안되는 경우에는 용기를 내서 「아닙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마음이 넓은걸까요?
아뇨, 다혈질인걸로 봐서 그건 아닌것같다고 생각합니다(웃음).
23.멤버
AKB48에 들어간 이후로, 예전과 같은 자유는 누릴 수 없었지만,
덕분에 멤버라는 최고의 친구들을 얻을 수 있었어요.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멤버들 없이 저 혼자 있었을때
매우 불안하고 힘들었던것을 기억합니다.
「AKB48은 주위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적도 있었습니다.
연기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온 사람들 사이에서(아마 배우들을 말하는듯)
「"AKB48이라는 간판덕분에 나올 수 있었던거지?" 라고 생각하고 있으려나」라던가
「어중간하게 이것저것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는건 아닌가」라며 이상하게 신경을 쓰게 되는등,
부정적으로 생각해버린적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다른 연예인들과 터놓고 이야기를 하면,
「AKB48은 수백명의 여자아이들로 이루어져서 어떻게 보면 무서운것같아」라고
옛날의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경우가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멤버들이 제 곁에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혼자가 되어버렸을때의 두려움은 물론 있습니다.
그렇지만 졸업해도 변함없이 제 곁을 지켜줄
소중한 친구들이 있기때문에 전혀 외롭지 않아요.
하는일은 이제 서로 달라서 몸은 떨어지고 말겠지만,
테레비에서 볼때마다 저도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멤버들과는 평생 친구로 지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24.잃은 것과 얻은 것
2015년 8월 2일,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저의 졸업 콘서트가 있었습니다.
사실 별로 내키지 않아서, 하고싶지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큰 주목을 받는것은 제가 가장 싫어하는것중 하나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에게는 과분하기도 하고, 왠지 부끄러워서...
그래서 가능하면 소박하게 하고 싶었습니다만,
역시 그런건 무리였네요(웃음).
어른들의 사정도 있었던 터라, 제 의견은 바로 기각되었습니다.
리허설 초반에는 컨디션 저하로 참가하지 못하고,
나중에서야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참여하지 못했던 그 리허설에서 이미 어떤 멤버들이
눈물을 보였다는것을 듣게 되엇습니다.
왠지모르게 멤버들 모두에게 고마웠습니다.
저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청난 분량을 연습해야 했기에
(실제로 릿짱은 본인의 졸업 콘서트이다 보니, 엄청난 무대에 출연해야만 했다)
순서라던가 포지션이라던가 외워야할것이 엄청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실 당시에는 감동할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콘서트는 2일간 4회 공연.
졸업 세레머니는 그 이틀째의 마지막 공연이었습니다.
첫날이 끝난 시점에서 이미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랐었습니다.
굉장히 피곤한 상태였지만,「내일 있을 공연을 위해서 연습해야해...」
라고 생각하면서 잠시 눈을 감았었는데,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도 제대로 준비 못했는데!」
마치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채 시험치는 당일이 찾아온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드디어 콘서트 당일.
객석에는 제 이름이 적혀있는 오시타월이랑
부채를 가지고 계시는 팬분들이 그 어느때보다 많이 계셨습니다.
드문 광경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웃음).
눈물 흘리는 그런 분위기는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가급적 밝은 분위기로 가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려고 노력했었는데, 제대로 성공했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불안함이 매우 컸던 상태였기 때문에, 콘서트가 끝났을 때에는 일단 안심했었습니다.
2일뒤, AKB48에서의 마지막 졸업 공연이 아키하바라의 극장에서 열리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선배들을 보내기만 했었는데, 드디어 이제는 제가 떠날 차례가 된것입니다.
어쨌든 매우 즐거웠습니다!
무대 위에서 제가 흘린 땀을 보고 눈물로 착각했는지, 어떤 멤버는 울기도 했습니다.
물론 바로 「아냐, 운거 아니야!」라고 대꾸했지만 말이죠.
전력을 다한 공연이 드디어 끝이 났습니다.
「끝났다~~~~~~!!!!!」라고 외쳤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다 끝난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조금만 머물다가 그만두려고 생각했던 이곳에서 5년을 보냈습니다.
연구생때 같이 들어왔던 멤버들은 어느새 반절이나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노래와 춤위주의 레슨이었는데, 매일 반복되는 레슨에 지쳐서
떠나버리는 친구들도, 대학이나 다른 길을 발견해서 떠나는 친구들도 매우 많았습니다.
동기였던 친구가 그만둘때마다, 「나도 떠나야겠다」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럴때마다 팀이 바뀌거나, 아니면 하고싶은 일을 맡겨주시곤 하셔서 타이밍을 놓쳤는데
그것들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여기까지 이렇게 이어진듯한 그런 느낌이에요.
뭔가 짜증나는 일이 있거나 매우 지쳐버리면 「이제 진짜 그만둘꺼야!」라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종종 말하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반은 진심이고 나머지 반은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그런 의미였던것입니다.
「그만두고 싶다」라고 말했을때 발산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그만두고 싶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반대로 잘 풀리지 않던 일도 오히려 잘 풀려버렸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언더걸즈에 뽑혔을 당시에 「선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라고 진심으로 생각했었습니다.
AKB48에서 뿐만아니라,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꿈이 생긴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 꿈이 실현되어서(릿짱은 실제로 6회 총선거에서 16위로 선발에 진입한다.)
연기라는 새로운 꿈에 연이 닿게 되었기에,
「지금이야말로 그만두어야 하는 타이밍인가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역시 지금은, 팬분들에게 (배우라는 새로운 목표에 데려다 주어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25.그리고, 지금
AKB48을 졸업하고 곧바로 무대 「AZUMI」의 연습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저에게는 (AKB48이라는 그룹에) 더이상 돌아갈곳이 없기에,
불안한 마음이 한가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연습실 구석에 앉아있었어요.
그렇지만 연기자분들이 먼저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고,
연기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가르쳐주면서 점점 친해지게 되었고,
연습 중반 무렵에는 모두 엄청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엄청난 발전인 거에요!
주인공인주제에, 저는 무대경험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다른 배우분들은 안무를 외우는것도 엄청 빨랐기 때문에,
열심히 하지 않으면 다른분들에게 뒤쳐지니까 굉장히 필사적으로 연습했습니다.
첫 무대는 배우분들에게 도움을 받았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를 괴롭혔었던 춤과 노래를 배우던 그런 감각이,
무대를 연습하면서 되살아나게 되었고,
그동안의 노력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압박감은 물론 엄청났고, 긴장도 엄청 했지만 AKB48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무대에 올라갔었던 경험 덕분에,
관객들 앞에서 머리가 멍해지는 그런 대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어요.
오히려 무대 위에서 관객분들의 생생한 반응을 보는것이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대사를 잘 외울줄 몰랐어!」라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해주었습니다.
AKB48시절에는 아무래도 바보 이미지였고, 게다가 무대또한 처음이었기 때문에
모두에게 「잘할 수 있겠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어떻게 보면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것일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완벽했던것은 아니었습니다.
공연 중반에 고비라고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집중을 하려고 해도 전혀 집중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상담을 받으면 「괜찮아, 흔한 일이야」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전부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었기 때문에 혼자서 괜히 급하게 행동했었는데,
다른분들 덕분에 차근차근 제대로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대가 끝났을때에는 정말로 아쉬웠어요...
무대는 드라마나 영화와는 다른 조금은 독특한 그런 일체감같은것이 있었습니다.
한달정도를 같이 지내면서 연습하고, 무대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즐겁게 지냈었는데, 당장 다음날부터 그런 생활은 없다는것이,
그리고 더이상 얼굴을 마주할 수 없다는것이 매우 쓸쓸하게 느껴졌어요.
배우라는 직업은, 맡고 있는 일이 끝나면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외치며 이별하고,
또 다른 현장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것의 반복이에요.
이러한것에도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제 자신이 좋아하는것, 그리고 하고 싶은것을 할 수 있는것에 대해서
엄청난 행복과 감사함을 느끼면서 매일 매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
26.다카미나상에게 배운것
//커다란 신세를 져버린 선배에게
굉장히 많은것을 가르쳐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선배로부터 엄청나게 많이 배운 덕분에, 후배들에게도
그대로 알려줄 수 있었고, 이것이 계속해서 이어져
오늘날의 AKB48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좀 더 잔소리를 많이 퍼부어주었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는 너무 엄격한건 싫어하지만 말이죠(웃음).
지금의 선배는 매우 친절하기 때문에 조금은 더 엄하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겁니다.
말하고 싶은것을 말하지 못하면 혼자서 스트레스 받고 끙끙 앓는 성격이니까요.
그러니까 주위를 신경쓰지 말고 하고싶은 말을 열심히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카미나상이랑 처음으로 같은 팀이 되었을때 「리허설도 전력으로 해주세요」라고
저에게 하셨던 말씀을 아직도 가슴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한마디 덕분에 여기까지 이렇게 달려올 수 있었습니다.
졸업하고 나서도 그 한마디를 여러방면에서 실천해나가려고 합니다.
//후배 멤버들에게
꿈을 향해서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서「선발 멤버에 들어가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면, 그것을 향해
열심히 노력해주었으면 좋겠고 AKB48에서의 목표가 아닌
다른 목표가 있다면, 그것을 위해 과감히 도전하는 정신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후회하지 않을 인생을 살도록 노력해주세요.
//팬분들에게
연기라는 길로 진로를 결정한 만큼, 지금처럼 미디어에
자주 노출 될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돌에서 여배우가 된다는것이 그렇게 간단한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가능하다면 25세 정도에 뭔가 「카와에이 리나」라는 배우를 떠올렸을때
「이거다!」라고 떠오르는 대표작을 남기고 싶고, 그것으로 여러분들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입니다.
이 한걸음 한걸음이 다음 목표로 이어지게 되겠지요.
그래서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카와에이 리나」라는 배우를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7.타임머신은 필요없어!
만약에 타임머신으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저는 아마 그런 선택은 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후회하는 일도,
특별히 지우고 싶은 과거도,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죠!